베넷 교수 Richard Dyer-Bennet는 1913년 생 싱어송라이터로 1940년대 초판의 포크 음악 르네상스를 주도한 연주자 중 한 명입니다.
카운터 테넉 음역의 포크 가수
완벽한 음정, 고음 또는 카운터 테너 음역으로 노래하는 가수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분이 그 고음을 내기 위해 스스로 거세를 하지 않았을까 의심도 해 봅니다. (너무 목소리가 고와서 하는 소리이고 펙트 확인이 안 된 이야기니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1944년 뉴욕 시청과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 기록이 있는데요, 이 곳에서 공연을 한 최초의 포크 연주자입니다. 2차 대전 중에는 선전 노래를 불렀고 필리핀 순회 공연도 다녔고, 야전 병원에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당시의 포크송은 서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아이러니 한 부분은 포크송의 가사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반전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포크 송의 가사의 분위기, 전쟁!
가령 Joan Baez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Jackaroe'의 가사는 전쟁에 간 남자친구를 찾는 여인이 남장을 해서 군에 입대하는 내용입니다. 또 1960대 Mary Hopkin의 'Fields of St.Etienne'의 가사는 팔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며 전쟁터로 가는 남친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하죠 "왜 우리는 에티엔느 벌판에 같이 누워있을 수 없었나요? Wht we can't remain in the fields of St.Etienne"
매카시즘의 표적이 된 교수
베넷교수는 후일 매카시즘의 표적이 됩니다. 반공주의자에게는 눈에 가시가 되었겠지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에 의해 고생을 하다 이후 1955년 자신의 녹음회사 설립합니다. 이후에 스테판 포스터의 노래, 스코트랜드와 아일랜드의 노래, 마크 트웨인 시대의 노래, 엘리잡스 여왕 시대의 자유정신의 노래를 포함한 노래들을 연구하면서 생을 보냅니다.
음악은 음악으로 받아 들여야 하고, 노래 속의 표현은 대중의 이야기로 귀 귀울여야 합니다. 그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통제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경멸해 왔던 후진 적인 세계와 다를 바 없게 됩니다.
베넷 교수는 1960년대 말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 1972년 뇌출혈로 왼손 사용하지 못하고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의 음반이 발매된 적이 있습니다. 나이 든 여인이 곱게 불러 주는 듯한 그의 노래,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글. 가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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