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씨는 2005년 8월!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평양에서 남한 가수 첫~ 단독 콘서트 “Pil & Peace” 개최했습니다. SBS를 통해 남한에도 생중계되었었습니다. 조용필 씨는 광장이나 몇만 명이 들어가는 체육관을 원했지만 북한인지라~ 뜻대로 안되어서 고작 7천 석의 자리만 메웠다고 합니다.
전설이 될 조용필의 평양 콘서트
조용필의 콘서트
철학사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칸트에게로 흘러 들었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칸트에게서 나왔다”
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는 뜻인데요, 철학사에 칸트가 있었다면~ 한국의 대중음악사에서는 조용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조용필 씨가 했던 콘서트는 과거의 전설이었고조용필 싸가하는 콘서트는 현재의 전설이며 조용필 씨가 할 콘서트는 미래의 전설일 것입니다.
2005년 평양 콘서트
조용필 씨는 2005년 8월!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평양에서 남한 가수 첫 단독 콘서트 “Pil & Peace” 개최했었는데요. 조용필 씨는 광장이나, 몇만 명이 들어가는 체육관을 원했지만 북한인지라~ 뜻대로 안되어서 7천 석 정도의 자리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이날 공연은 류경∙정주영 체육관에서 있었는데요, 류경 정주영 체육관은, 정주영 회장 당시 현대건설의 주도하에 지어진 실내 체육관으로 평양 체육관 다음으로 큰 규모입니다.
류경은 버드나무가 많은 도시라는 뜻으로, 평양의 오랜 별칭인데요, 완공은 2003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류경체육관이라고 하기로 했다가 정주영 씨의 업적을 높이 사 류경∙정주영 체육관이라고 불리게 된것이죠.
공연 당시, 북한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의 암표가 30달러 이상까지 갔고, 그 마저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북한 평균 근로자 월급의 2배인 금액이라고 하니 조용필 씨가 북한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공연은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주었을 겁니다.
행사 기획
이 행사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연출한 오기현 PD는 후에 '그해 여름 그들은 왜 조용필을 불렀나'란 책을 저술하기도 했었는데요, 북한 측에서 조용필 씨를 찍어서 선택을 했고 결국, 조용필씨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서 성사된 공연이라고 합니다. 북한 측에서는 조용필 씨 이후에는 나훈아, 조수미, 심수봉, 김연자 순으로 공연을 해 달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가수 중 제일 먼저 조용필 씨를 언급했다는 데서 가왕 조용필 씨의 위용을 알 수 있는 거죠. 탈북자들이 쓰는 대북 관련 책자들에서도 북한 고위층 자제들이 조용필 씨 노래를 몰래 듣고 다닌다고 하는 얘기는 이전부터 나왔었습니다.
공연당시 조용필씨가 공연을 시작해 '단발머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친구여'등을 부를 때까지도굳은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용필 씨가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를 부르기 시작하자 관중들의 눈시울이 젖기 시작했고, 처음에 무덤덤하던 7천여명의 관객들은 갈수록 공연에 빨려들며조용필 씨의 첫 평양 공연은, 남북한 사이에 가로놓인 마음의 장벽을 허물었다고 합니다
홀로 아리랑
이날 마지막 곡은 ‘홀로 아리랑’이였는데요 조용필 씨가 공연후에, 밝힌 바에 따르면 공연이 기획될 당시에는 전혀 예정에 없던 곡이었고
북한 측의 요청으로 부르게 된 곡이라고 합니다. 조용필 씨의 평양 단독 콘서트 “Pil &Peace”는 그 이전의 남한 예술인의 방북 공연과는 달리 조용필 씨의 고집에 따라 철저히 정치색을 배제하고 '평화' 하나만을 주제로 삼아 조용필 씨 본인의 노래만으로 레퍼토리가 구성했었기 때문에 홀로 아리랑이 예정에 없었습니다.
홀로 아리랑은, 아리랑 선율에 기초해, 독도와 통일 등 남북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가사를 가진 점 때문인지 이미 북한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듯했나 봅니다.
북한 측에서 조용필씨의 본공연을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 급하게 이 노래를 콕 집어
“정말 좋은 남한 노래 하나를 알고 있는데 무대에서 불러줄 수 없겠냐”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조용필 씨의 술회에 따르면 조용필 씨는 이 노래를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용필 씨는 ‘저렇게 간절하게 요구를 하는데…
게다가 자기네 노래도 아니고, 우리 쪽 노래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거 하나 못들어 주나란 생각에 서둘러 곡을 파악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준비를 마쳤다고 하는데요, 악보도 없어서 급하게 따서 부르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결국 본공연 앙코르 무대에서, 대형 한반도기가 무대 위에 펼쳐지는 가운데 엔딩곡 ‘홀로 아리랑’을 열창하며, 마지막을 장식했으며 7천여 명의 평양 관객들도 기립 박수로, 가왕에게 화답하였습니다.
한돌
이곡은 한돌 씨가 작사/작곡한 곡으로 서유석 씨가 1990년에 부른 버전이 가요로서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곡입니다. 전통 아리랑선율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음색과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가사가 돋보이는 곡인데요, 현재의 애국가를 대체할만한 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곡이기도 합니다.
조용필씨가 2005년 평양공연 마지막 곡으로 불렀고 KBS ‘1박 2일’의 독도편과 백두산 편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상당한 인지도를 얻은 곡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1박 2일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곡이 인지도를 얻은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맞지만 먼저 평양공연으로 인지도를 얻은 후 1박 2일에서 다시 사용하여 더 높은 인지도를 얻은 것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18 "봄이온다"
2018년 4월에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이 있었는데요, 공연의 부제목은 "봄이 온다"였습니다. 이 공연에도~ 조용필씨가 함께 했었는데요.
이 공연에서는 조용필 씨와 함께 하는 위대한 탄생이 세션을 했었습니다. 위대한 탄생이 조용필 씨가 아닌, 다른 가수의 노래를 연주하는 것은 위대한 탄생 결성된지 대략 40년 만에 처음이습니다. 위대한 탄생은, 최고의 연주를 선사하길 바라는 실무단의 요청으로 협연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었는데요, 이 공연에선 출연자 중, 조용필 씨가 가장 많은 4곡을 불렀습니다. 그 겨울의 찻집, 꿈,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등 네 곡이었죠
그 겨울의 찻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도 알려진 노래이며 평양 공연에서 북한의 요청으로 선곡되기도 한 곡이죠. 북한 단독공연에서는 첫곡으로 부르기도 한 곡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곡은? 전 출연진이 함께 했던 조용필 씨의 ‘친구여’였는데요, 그러고 보니, 이 합창곡까지 하면, 조용필씨 노래는 5곡입니다. 조용필씨의 노래로 시작해 전 출연진이 함께 했던 무대였습니다. 한국의 가왕이 북한 동포들에게 건네는 ‘친구여’의 그 파장은 어떤 정치인보다 훨씬 컸을 겁니다.
이 공연에는 김정은과 그 부인 리설주가 함께 하기도 했었고 남측 출연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었는데요, 이젠 이런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볼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글. 광화문생활문화연구소
https://youtu.be/T5yTm_6W5nk?si=2C7ana5iu1GQSh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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