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수이야기

조용필 웨이타? 조용필의 나이트 쇼! 한끼 줍쇼!

by 광생연 2023. 9. 18.
반응형

대한민국 100대 명음반에 두 장이 선정된 가수! 1집 (29위),  조용필 7집(76위), 2013년 M.net 레전드 100 ‘가수 종합 평가 1위’, 프리미엄 웨이터부터 조용필의 나이트 쇼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가왕 조용필 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미 음악은 비틀즈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한국 음악은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눕니다.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이병철의대중문화탐구
가왕 조용필 에피소드 모음


나이트 웨이타 (92. 3.30)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

옛날에 나이트에 가면 웨이터들이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묻는데요. "담당 웨이터가 누구나고?" 그 당시 웨이터들이 이름을 보면
당대 최고의 스타가 누군지 알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많았던 웨이터 이름이 조용필! (그리고 많은 웨이터가 나훈아, 이주일)  
그 당시 웨이터 분들이 홍보를 하러 다니셨었는데요, 조용필 씨도 만나신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전화를 하면서 메모를 하고 있으셨는데, 한 웨이터가 명함과 껌을 주는데 명함이 조용필이었다고 합니다. 조용필 씨도 놀랐지만, 준 사람도 놀라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었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남자분들만 이해할텐데요, 소변기 앞에 딱 눈높이 정도에 광고지를 붙입니다. 조용필 씨가 화장실에 갔는데, 붙이고 있는 분이 조용필이라고 붙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한 업소에서는 같은 이름을 두 명 쓰지 못할 거고 그래서 조용필 씨가 물어보셨답니다.  
그랬더니 프리미엄이 있었다네요. 그 당시 금액으로 100만원이고 가게 업소에 내는 거라고 했답니다.
남의 이름을 쓰는데 당사자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참 재미있던 시대였습니다.

 

한 끼 줍시오

조용필씨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 올려져 있는 게 있었는데요. MBC의 아주 오래된 방송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끼 줍쇼’로 올려놓으셨더군요. 우리가 아는 프로 ‘한 끼 줍쇼’는 아닙니다. 대구 대명동인 것 같다는 글도 있는데요, 사연의 당사자는 고3인 것 같습니다. 채현숙이란 분! 조용필 씨가 집으로 찾아가 누나, 동생 부모님, 할머니 다 모셔놓고 
‘친구여’를 불러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눈매가 선하고 웃음이 맑은 얼굴이십니다. 아마도 80년 대인 듯 합니다.  


조용필 작곡의 교가

조용필씨가 작곡한 교가를 쓰는 초등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비산 초등학교라고 합니다.  1978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교가가 없었는데요, 조용필 씨의 조카 조수지 씨가 이 학교에 재학할 당시에 학교 측에서 조용필 씨에게 교가의 작곡을 부탁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작사자는 초대 교장이었던 전정술 교장선생님이라 합니다.)


MBC 로고송 (1993년 5.8 토토즐)

조용필씨는 MBC 로고송을 만드신 적이 있었는데요. 이것도 술 한잔 하시다 약속하셔서 가사 받아 작곡하셨다고 합니다. 
‘그대가 여기에, 세계가 여기에, 사랑이 여기에, 꿈이 여기에
언제나 새로운 만남, 여러분의 오래된 친구 MBC 문화 방송 MBC’

 

벤츠 음주 운전 (1993.12.0)


조용필씨는 직접 운전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1993년 음주로 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운전하시던 차량이 벤츠였습니다. 동승자도 있었으나 동승했던 분이 기자 권혁종 씨였는데요. 응급 치료만 받고 귀가합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조용필 씨도 벤츠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계기였던 거 같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조용필 씨 사고에 관심이 없는 분이 없을 테니 당연히 한국에서의 벤츠의 신뢰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죠. 
사고의 정도에 비해, 안전하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부

 

조용필 씨는 기부로도 상당히 유명하시죠. 조용필 씨의 부인이신 고 안진현 씨로부터 상속받은 유산 4백만 달러(상속세 50% 실상속액 2백만 달러 24억) 전액을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물론 이뿐이 아니죠.  2009년에 조용필 장학재단을 설립하였는데요. 
처음엔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재단으로 출발했지만 분야가 확대되어 초·중·고·대학생 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재단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매년 40~50명의 학생들이 이 재단으로부터 학자금을 받아 학업의 꿈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콘서트 수익금의 경우도, 일부를 기부하고 있으며 조용필씨가 운영 중인 YPC 프로덕션은 주주 배당금 대신 기부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조용필 씨는 기부금액만 연평균 3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죠. 포브스지에서 선정한 아시아의 기부 영웅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현재 알려진 공식적인 금액만도 88억 정도라고 하죠. 비공식적으로는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 드러나기를 싫어하는 조용필 씨 성격 탓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실제로 (2011) 한 인터뷰에서도 조용필씨는 “조용히 하고 싶어도 자꾸 알려져서 많이 쑥스럽다”며 
“지금도 그렇지만 기부 사실을 알리는 건 내 체질상 맞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조용필 씨는 장학재단 설립 때에도 재단 축하파티조차 열지 않았는데요.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지인들이 ‘왜 축하연을 열지 않았냐’라며 항의를 했을 때에도
조용필 씨는 “차라리 그런 돈으로 (소아암) 환우들을 도와주는 게 낫다”라고 하신 분입니다.


술·담배·음식

조용필씨는 흡연도 정말 많이 하시고 술도 좋아하셨었다고 합니다. 조금이 아니라 정말 많이 하시는 편이었다고 하죠. 줄 담배에 말술이셨다는데요. 같이 먹어 본 분들은(임진모) 손수 말아 주시는데, 내공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김순곤 씨에 따르면 녹음 후에는 한잔 하시는 편이었다는데요, 밤새 드시기도 하셨답니다. 그런데, 거의 음악 얘기만 하시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음악 말고는 관심도 없는 데다가, 워낙 바쁘기도 하니 다른 걸 모르기도 하셨을 겁니다. 술 좋아하시는는 분들은 매운 걸 대체적으로 좋아하시는데요, 조용필 씨는 매운걸 잘 못 드시는 편이어서 낙지 볶음 시키면 씻어서 드셨다고 합니다. 설렁탕 같은 거 좋아하시는 편이었다고 하고요. 밥도 반공기쯤 드셨다고 합니다.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그런데도 그 소리를 내는 건 정말 대단하죠. 이젠 담배는 끊으신 것 같구요. 술은 조금 하시는 것 같은데요.
[50주년 - 배철수] 실제로 배철수씨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거의 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먹거나 어떤 경우는 두 달에 한번 정도 드신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귀 파는 습관이 있으셨다고 하는데요 정도가 심하셨다고 합니다. 성냥이든 뭐든 다른 것을 사용해서라도 귀 파는 습관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2018 50주년 인터뷰) 이젠 거의 유일한 취미는 골프인데요, 그마저도 허리가 좋지 않아 예전처럼 자주 하지는 못하신다고 합니다. 

 

조용필의 나이트 쇼

 

1991년 MBC 라디오에서 조용필씨는 ‘조용필의 나이트쇼’란 프로가 진행하신 적도 있으신데요, 술 한잔 하시다가, 하기로 하셔서 그 바쁜 와중에도 했었답니다. 물론 매일 진행하신 것은 아니고 1주일에 한번 하신 거 같은데요. 워낙 바쁘신 시기인 데다. 일본을 왔다 갔다 하는 시기라 한 달 치를 미리 녹화해 두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이때 "이성미 씨와 당시 신인가수였던 신승훈씨가 출연했었다"라고 합니다. (배철수 조용필 50주년)

 

글. 광화문생활문화연구소

영상으로 보실 분들은 아래의 주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acUaZ6_RF7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