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바수반두 세친의 유식학 무아와 윤회 그리고 자아를 깨닫기 위한 수행, 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승불교 세진
1) 세친 世親 : 400 ~ 480)
이야기하려는 분은 인도의 바수반두입니다. 한역 이름이 세친인데요. 천친(天親)이라고도 합니다. 우린 중국의 현장법사가 한역한 세친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파(소승) 불교 내에서도 서로 다른 해석으로 싸우는 시대였는데요, 세친은 어린 시절, 부파(소승) 불교 중 가장 보수적이었고 세력이 컸던 설일체유부로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친은 대승으로 전향하였고, 대승의 큰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대승 불교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용수가 가고, 거의 200년 정도 되어갈 때쯤이었는데요, 용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공사상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잘못 이해해, 허무주의에 빠지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식은 중관이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에 집중했다면, 유식은 그 실체없는 현상을 보는 마음에 집중해서 마음을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서양적으로 표현한다면 용수는 대상 세상, 즉 대상인 객체에 대한 설명을 주로 했다면 세친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유식(唯識)
그럼 제일 먼저 유식학이라고 하니, 유식이란 말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중관학에서 모든 것은 공하다라고 하여 모든 사물은 연기에 의해 발생하며 자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성이란 고정된 실체를 말하는 것이니 ‘구체적인’ 사물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죠. 그러나 유식(唯識)은, 오직 유, 알 식! 오직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인, 식(識)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중관 사상은 공 개념을 통하여 모든 존재와 현상은 실체성이 없다고 보았죠. 그러나 유식학파는, 모든 것은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걸~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의식)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직 식은 있다고 해서 유식이라고 합니다.
3)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결국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 되죠. 이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합니다. 일체 모든 것. 유 오직, 심 마음, 조 만들다. 모든 현상은 오직[唯] 마음[識]의 작용으로만 존재하고 마음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일체유심조는 유식의 대표적인 사상인데요. 이 깨달음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걸 글이 아닌, 직접 깨달음 얻으신 대표적인 분이 한국의 가장 위대한 고승 원효입니다.
제가 이해한 봐로는,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나에게 빨간 꽃은 다른 생명체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색일 수도 다른 형태일 수도 있을 겁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예쁜 꽃이 어떤 생명체에게는 무서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와 인간이 보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들 간에도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우리는 실체를 본 것이 아니라 의식들이 지어낸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결국, 이세상이 좋게 보이는 것도, 나쁘게 보이는 것도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뱀이 징그러운 것도, 판다가 귀여운 것도 내 의식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정체는 뭘까요? 세친은 이 마음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했습니다.
4) 식(識)
① 오식 + 6식 [의식(意識)]
그럼 이제 자세히 이해해볼까요?
유식학파 핵심은 “오직 식은 있다”
“세상은 공하나 오직 의식(인식 = 마음의 작용)은 있다"
식?
인식하다. 안다는 거쟎아요. 뭐로? 오감으로 알죠. 오감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죠. 그러니 눈∙귀∙코∙혀∙몸으로,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을 알 수 있는데요, 이걸 불교에서는 5 식이라고 합니다.
즉, 식은 알다, 인식하다 이런 뜻이니, 5감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그리고 오식! 이걸 종합하는게 6 식인데요.
그럼 이런 앞의 5가지 식을 묶어서, 의(意 - 생각)가 되는데 그게 의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의식(意識)이란 말은 불교 용어입니다. 초기불교는 6식까지 있었는데요, 유식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게 7식과 8식입니다.
② 7식(말라식) + 8식(아뢰아식)
유식학파가 주장하는 7식은 말라식, 8식은 아뢰아식이라고 하는데요. 6식(의식) 근간에는 7식인 말라식이 있고, 7식의 근간에는 8식인 아뢰아식이 있다고 합니다. 7식인 말라식은 ‘자아식(자아의식)’이라고 하고 8식인 아뢰아식을 ‘근본의식’이라고 하는데, 이는 가장 심층적인 마음인 것이죠.
아뢰아식인은 서양에서 사용하는 현대적인 의미로는 프로이트가 말했던 ‘콤플렉스 = 무의식’과 유사한 개념으로 기억 창고의 역할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병 치료에 최면을 걸어 치료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한 말들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 무의식의 총체를 콤플렉스(complex)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극도로 무서워하고 어떤 사람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은 그들의 근간을 이룬 의식 아뢰아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③ 아뢰아식과 업
근본불교에서 우린 윤회(輪回)한다고 합니다.
윤회?
업에 따라 윤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아(無我), 나는 없다. 내가 없는데 업은 어디에 있죠? 그럼 어떻게 윤회하죠? 이걸 해결하는 것이 아뢰아식입니다. 아뢰아식은 카르마(Karma), 즉, 업의 씨앗, 종자라고 하는데요. 종자를 저장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뢰아식을 종자식이라고도 합니다. 착한 업을 지으면 착한 종자가 저장되고 나쁜 업을 지으면 나쁜 종자가 저장된다는 건데요, 쉽게 말해, 우리가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무의식속에 씨앗처럼 심어진다는 뜻입니다.
꽃을 포장한 포장지에 향기가 남고 생선을 싼 포장지에 비린내가 남듯이 우리가 한 행동도 자취가 남아 저장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뢰아식은 업을 저장하는 곳으로 이 아뢰아식이 윤회를 만든다는 겁니다. 우리는 윤회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행위들의 기록이 저장 되있다가 죽으면 육신은 흩어집니다. 그러면 업의 응어리들이 빠져 나와 다니다가 유사한 사람에게 끌려 들어간다고 합니다. 아뢰아식은 나란 존재가 해온 모든 경험과 기억의 전체로 윤회로 따진다면 전생 그리고 그 전생.. 이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말합니다. 이걸 종자라고도 하는 것이죠. 그럼 이 종자를 지워야, 윤회하지 않게 되겠죠. 그러니 오랜 세월 동안 종자를 지워야 해탈하게 되는 겁니다.
④ 말라식(자의식)
아뢰아식에 쌓인 업이 나(자아)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즉, 업으로 쌓인 것을 나(자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 ‘나’라는 생각을 말라식이라고 하는데요, 그럼 아뢰아식이란 무의식에서, 말라식이라는 자아의식으로 생기는 것이죠. 그러나 나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식은 단지 행동의 자취들이 모인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업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형성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형성되게 될 변화하게 될 그 무엇으로 변화의 과정적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나다라고 할 수 있는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겁니다. 이걸, 깨닫기 위한 수양이 필요할 텐데요, 유식학이 강조한 수행법이 요가(Yoga)입니다.
5) 수행방법 : 요가
유식학의 수행법 요가(Yoga) 실제로 현대인들이 하는 요가가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물론 다소 변질된 부분은 있죠. 이렇게 요가 수행을 하는 것을 요가행이라고 하였고 이런 요가 수행자들을 유가사(瑜伽師)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유식 사상의 다른 이름이 유가행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요가행파가 아니라 유가행파일까요?
그건 중국에서 요가를 한역할 때, 유가라고 적으면서 혼란이 오게 된 것입니다. 유가사란 요가를 행하는 사람이란 뜻인 것이죠. 우린 인도의 철학을 중국의 기록에 따르다 보니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일관성이 없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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