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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대승불교 大乘佛敎의 탑은 무덤이다, 간략한 대승불교 이야기

by 광생연 2024.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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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배웠던 소승불교, 지금은 부파불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승불교에서는 이론이 체계화될 때 아함경이 아닌 화엄경, 법화경 같은 다른 경전을 중시하면서 부처님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게 됩니다. 그 당시 원래 부처님의 말씀은 이런 거예요.라는 분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의 시작

소승불교 

개인의 해탈강조[열반] + 사회와 분리

학창 시절 배웠던 소승불교. 지금은 부파불교라 하고 있습니다. 부파불교는 아라한을 추구했었는데요, 아라한은 석가보다 grade가 떨어지니. 열반에 이르는 것은 맞지만, 자기만 열반에 이르는 거죠. 전생에 공덕이 석가보다 작아서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출가하여, 자신의 해탈(열반)을 추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수행에만 중점을 두었던 것이죠. 영화에 나오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산에 굴속에서 수련하고 합니다. 부파불교는 출가주의 + 개인의 해탈(열반주의)을 강조하였고 결국 사회와 분리되고, 대중과 멀어지게 됩니다.

 

이론적 체계화

뿐만 아니라 부파, 즉 파가 갈리다는 말입니다. 석가 사후에 석가의 말씀을 모으는 과정, 결집이라고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서로 견해가 다른 분들이 갈라져 나누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부파불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외부적으로, 다른 사상과의 대결 속에서 높은 높은 철학적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부처의 설법 내용이라기보다는 부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게 됩니다. 

 

부파 불교는 주로 논중심이죠. 더 쉽게 이해한다면, 부처(석가)의 말씀은 경, 고승, 스님의 말씀은? 논(논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석가의 말씀은 이야기 중심이였다면, 이 때 철학적 이론적 체계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게 되고, 우리는 어려워지는 거죠.

결국 브라만교(흰두교)에 비판하고 나온게 불교인데 오히려 브라만교(흰두교)의 내용인 듯한 것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AD1부터는 아함경이 아닌 화엄경, 법화경 같은 다른 경전을 중시하면서 부처님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 생각에서 너무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 부처님의 말씀은 이런 거예요'라는 분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대승불교 vs 소승불교

대승은 부파불교를 비판하며 출현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부파불교를 소승(= 작은 깨달음)이라고 낮추어 불렀습니다. 대승은 큰 깨달음이란 뜻이니, 대승의 입장에서 부파불교는 소승인거고 우리나라는 주로 대승불교니 이에 따라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했습니다. 사실 석가 당시에는 신흥종교였죠. 석가는 6년만에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45년간 포교, 강의 하십니다. 그런데 강의를 잘하셨으니 불교가 퍼져 갔겠죠, 그 당시 대부분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일텐데요, 어떻게 잘하실수 있었을까요? 강의를 이해할수 있도록 쉽게 하신거죠.

 

대승불교의 시작

그러나 석가 입적 후, 불교는 석가를 부처로 숭배하며 출가하여 석가와 공동생활을 하던. 그러니 출가자 중심이였습니다. 요즘 우리가 쓰는 말로는 비구, 비구니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부심도 대단했을겁니다. 난 그분께 직접 들었다 ~ 이런식의... 그러니, 다른 사람들과는 그레이드가 다른다~ 이런 뿌듯함! 그러다 보니 석가 사후 계율도 더 엄격해지고 있어 보이고 싶어 그랬는지 뭔가 점점 고상하게 어렵게 만들어 갑니다.

 

결국 '난 일반 대중과 달라!' 이런데 중점을 두었던 것이죠. 그러니 당연히 대중에게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럼 불교 다시 대중에게 그럼 보다 쉬운 불교가 됩니다. 그게 대숭불교의 시작입니다.

 

모두 부처가 될수 있다.

대승 불교는 출가수행을 위주로 하는 소승 불교와 달리 재가와 출가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성불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불성의 개념은 대승불교에서 발전한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중생은 모두 여래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셨는데요, 여래장은 여래 = 부처니까 부처를, 장 내장한다는 의미이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은 맞습니다. 그게 대승불교에서 ‘불성’이란 개념으로 정리가 되죠. 반면 소승에는 이런 표현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죠. 출가승 지식인 중심으로 개인의 해탈을 강조하니까요. 그런데 대승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럼 출가승과 재가 신도의 구분이 없는 거죠. 대승불교는 불교의 대중화에는 꼭 필요한 개념이였던 거죠.

 

불성(佛性)

중생(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죠.

불성? 불(佛) 부처, 성(性) 성품,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요, 이걸 다른 말로는 ‘청정한 마음 = 청정심’이라고도 합니다. 청정은‘맑고 깨끗’ 이런 뜻인데요, 청정심이란 그냥 한자어의 의미정도 입니다. 결국 ‘불성은 청정하다’라는 의미라고 이해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조선 세종때 지어진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여 지은 노래를 실은 책입니다.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달은 하나지만 천 개의 강에 모두 비추어 천개의 강물 속에 잠겨있다'는 의미로 '달'은 불(부처)을 비유하는 것이고, '강'은 중생을 뜻한다고 하죠.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 가슴마다 부처가 존재한다 뜻인것이죠

 

 

 

사리와 탑

석가의 장례를 주관한 분이, 소승때도 소개해 드렸던 제자 가섭인데요, 석가 사후에, 많은 사리(8섬 4말)가 나오는데요.

가섭은 석가의 사리(유골)를 8개의 부족 대표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사리를 넣어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게 탑입니다.

 

처음에는 8개였습니다. 여기서 사리는 원뜻이 시신이란 뜻이고, 사리는 화장후 나온 뻐들인데요, 요즘은 고승들에게 화장후에 나오는 작은 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예전과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탑은 석가의 유골과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일종의 무덤인거죠. 탑은 산스크리트어고 한역시 발음대로 적은게 탑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없었던거니 해석이 안되, 발음대로 그대로 쓰게 된것입니다. 

 

종교의 확대를 위해서는 제국의 후원이 필요하죠. 기독교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처럼 불교도 인도 통일이후, 아쇼카 왕이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불교의 포교를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아쇼카 왕은 7개의 탑을 열어 사리를 분리해 여러개의 탑을 만들게 됩니다(8만 4천기)

그리고 불교의 전파 위해 석가의 사리가 여러 나라로 가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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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사리

진신사리! 진신? 진짜 몸에서 나온 사리죠. 그러니 석가의 사리를 말합니다. 부처의 사리를 진신사리, 진신 사리가 들어간 탑이 진신사리 탑이죠. 진신사리를 모신 절에는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본존불상을 안치하지 않는 관례가 있는데요,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진신사리를 안치한 사찰은 바로 그 부처에게서 나온 사리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있는데 굳이 대체물을 놔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양산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므로 불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신 사리가 그리 많을 수가 없으니 우리나라의 대부분은 탑은 그분의 말씀, 불경을 넣게 됩니다. 그리고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로 구분합니다. 이 중에서 승사리를 모신 탑은 부도(浮屠)라 하여 일반 불탑과 다른 형태로 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사찰에 가면 불탑보다 작고 동글동글하고 작은 탑이 있는데요, 이건 승탑 또는 부도라고 합니다. 그 절에 사셨던 스님들이 열반에 드시고 나면 불교식 장례법으로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으르 그분들의 사리를 모신 탑입니다.

 

 

글. 광화문 생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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