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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철학

천도교(동학) 이야기, 최시형, 손병희, 그리고 어린이날까지!

by 광생연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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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최시형,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천도교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동학이야기

2대 교주 최시형(1827~1898)

최제우가 참형을 당한 후, 그의 제자이자 집안이기도 한 최시형이 2대 교주를 이어받았습니다. 최시형 역시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2대 교주로서 35년간 숨어 지내면서도 포교활동에 힘써 동학 교세 확장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시형 선생은 '사인여천(事人如天)', 즉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는 가르침을 통해 인간 존중과 평등 사상을 강조했습니다. 어린아이, 여성, 노비 등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를 '한울님'으로 섬기라고 가르쳤으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도 하늘처럼 공경해야 한다는 삼경 사상(경천, 경인, 경물)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최시형 선생은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 논리를 통해 만물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했습니다. 밥 한 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자연의 기운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했습니다.

 

3대 교주 손병희(1861~1922)

동학 농민 운동 이후, 동학을 이끌게 된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은 19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 정세를 파악하고 동학의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그 사이 동학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용구가 친일로 변절하면서 손병희 선생은 정치 참여를 포기하고 종교로서 동학을 지키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인쇄소 보문사를 설립하여 동학 사상을 정립하고 교세 확장에 힘썼습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고, 동덕여학교를 설립하는 등 여성 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손병희 선생은 1919년 3.1 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에도 『개벽』, 『신여성』, 『어린이』 등의 잡지를 발간하며 민족의식 고취와 사회 계몽에 앞장섰습니다. 특히 그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 인권 신장에 기여했습니다.

 

 

 

 

천도교의 사상과 인물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 존중, 평등, 사회 정의 실현을 추구하는 민족 종교입니다. 천도교는 한때 신도 수가 3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백범 김구, 신숙, 김재중, 주현의 부친 주동림, 야구선수 한대화의 부친 한상준 등 많은 인물들이 천도교 신자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천도교는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천도교

천도교는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의암 손병희 세 분의 교주를 통해 발전해 왔으며,  '정성, 공경,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세상,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글은 고교 다양한 종교편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포교활동, 교리전파의 의도가 없는 글임을 밝힙니다.)

 

https://youtu.be/rjjLVxP9DfM?si=yG4IdTWfDbd9H4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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