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13집, 동요 4집, 김창완 솔로 3집 총 20개의 앨범을 발매한 산울림! 올해로 데뷔 46주년을 맞은 산울림과 김창완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산울림은 리더겸 맏형 김창완(보컬, 기타)씨와 동생 김창훈(보컬, 베이스), 김창익(드럼)씨가 함께 만든 형제로 구성된 그룹입니다.
산울림의 시작
1972년쯤 집에 500원짜리 기타를 들고 와 형제끼리 노래를 부른 것이 음악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요. 얼마 후 김창훈씨가 기타를 하나 더 장만하자 할 것이 없던 막내 김창익 씨는 전화번호부와 노트 등을 방바닥에 놓고 드럼 흉내를 내면서 그들의 음악은 시작되었다는 합니다.
이렇게 산울림 삼형제는 어릴 적, 주말마다 방에 계란판을 붙여서 방음실을 만들고 싸구려 기타로 자기들이 만든 곡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산울림 데뷔
산울림은 데뷔 당시 서울대 출신 형제들로 유명했었죠. 물론 김창완(농과대 잠사학과)씨와 김창훈(농과대 식품영양학)씨는 서울대였고 막내 김창익씨는 고려대 (기계공학 출신) 출신이었는데요.1977년, 우리나라 최초로 MBC 대학가요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산울림의 3형제는 '무이(無異, 평소와 다름없음)'라는 그룹명으로 <문 좀 열어줘>를 불러 서울 지역 예선을 1등으로 통과했지만 이 때는 이미 큰 형 김창완씨가 서울대를 졸업한 상태여서 대학생만 참가할 수 있다는 대회 규칙에 따라 본선에는 자동 탈락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김창훈씨가 본선에서 부르려고 만든 <나 어떡해>를 서울 예선 2위였던 서울대 (농과대학) 밴드 동아리 '샌드 페블즈' 6기가 불러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가요제 대상곡이 되었습니다. 김창훈 씨는 샌드 페블즈 5기 멤버이니 직계 후배 들인 거이죠.
샌드 페블즈 출신중에는 SM의 대표 이수만 씨도 샌드페블르 멤버였습니다.(서울대 농기계학과 52년생으로 김창완씨도 두 살 많음)
그리고 이수만씨는 대학가요제 1회 때는 사회를 보았습니다.
김창훈
둘째 김창훈씨도 데뷔 이후 줄곧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형 김창완 씨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작곡가로서의 실력은 형 못지 않았습니다. 김창훈 씨는 <나 어떡해> 외에도 산울림 자신들이 불렀던 <산할아버지>, 임지훈 씨의 <회상>, 김완선 씨의 <오늘 밤>, <나 홀로 뜰앞에서> 등을 작곡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김창완
리더겸 맏형 김창완 씨를요즘 아이들은 배우로 아는 분들도 많은데요. 정말 다재다능하신, 천상 연예인입니다. 노래, 연기, DJ, 집필, 그림.... 못 하는 게 없는 분인데요, DJ는 CBS, MBC, SBS, 등에서 다 활동했으며 드라마도 별에서 온 그대, 밥 잘사 주는 예쁜 누나등 정말 많은 작품을 했습니다.
그림도 잘 그리셔서, 2022년에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는데요, 1977년 데뷔 이후 산울림의 앨범 재킷 커버는 김창완씨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저서도 상당히 많은데요. 제가 아는 것만도 10편이 넘습니다.
[ 1982년 :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열림원)
1990년 :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야정문화사)
1995년 : 《집에 가는 길》 (문예마당)
2001년 : 《아빠의 선물》 (씨디엠테크놀로지)
2004년 : 《개구쟁이》 (문공사)
2005년 : 《이제야 보이네》 (황소자리)
2008년 : 《네가 있어 다행이야》 (창해)
2009년 : 《사일런트 머신 길자》 (마음산책)
2011년 : 《소울푸드》 (청어람미디어)
2016년 : 《안녕, 나의 모든 하루》 (박하) ]
삼형제
삼형제는 프로페셔널한 음악을 할 생각이 없었고 사회생활을 할 나이가 되었기에 지금까지 작곡했던 노래와 해왔던 음악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앨범 한 장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 1977년 산울림 1집이 나오게 되는데요, 이때 추정으로는 레코드 판이 40만 장 팔리게 되죠. 당시 기준에서는 엄청난 대박입니다. 음반 가게나 번화가는 물론이고, TV 라디오 등 1977년 전국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로 가득 찬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따라 하는 수준이었고 코미디에서조차 엄청난 패러디가 이루어졌죠.
이렇게 산울림은 이전 음악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가사로 데뷔와 동시에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산울림은 데뷔 1년 만에 TBC 가요대상 중창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선대 록 음악의 성향도 받아들이지 않은 산울림만의 독창적인 음악!
실제로 삼형제는 데뷔 전 대학 그룹사운드가 흔히 하던 카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에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부터 작곡에 몰두하여 데뷔 시점에 이미 상당한 분량의 창작곡이 있었다고 하죠.
산울님은 1977년 데뷔 이후대한민국 대중 음악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밴드로 평가받는 그룹입니다. 산울림이 과거에 발표했던 음반들은 국내 록 음악의 바이블이자 매뉴얼이 되었습니다. 산울림을 국내 헤비메탈의 창시자, 펑크의 시조, 때로는 얼터너티브의 원조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어떤 음악에도 영향받지 않았으나, 한국 거의 모든 록커들에게 영향을 준 팀이죠.
산울림은 중기를 지나면서부터 포크 락과 디스코 등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정규 앨범 사이사이에<개구쟁이>나 <산할아버지>, 와 같은 동요 앨범을 내기도 했는데요.
산울림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로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노래와 어린이를 위한 동요를 동시에 작곡할 수 있는 다양한 감성을 소화할 수 있는 밴드라는 것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김창익
2008년 1월 29일 드럼을 담당하는 막내 김창익 씨가캐나다 직장에서 눈길에 지게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사망하는 불의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김창완 씨는 "산울림은 가족 밴드라서. 막내가 떠나 버린 이상 더 이상의 산울림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산울림은 해체되고, 긴 전설의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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